제가 살고있는 아파트에서 곧바로 보이는
내리막길을 조금 내려가다 보면
자그마한 성당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당의 아랫쪽에는
대단히 허름한 가건물이 하나 있는데,
제가 일하고 있는 비봉소리회라는 곳입니다.
직장 가까우니까 좋겠죠?
제가 거기서 하는일이 뭐냐면,
수화를 가르치는 일이랍니다.
일주일에 두번씩 가르치는데,
요즘은 여중생들이 많이 옵니다.
아마 얼마전 HOT의 강타라는
가수가 수화자격증을 따겠다고
티비에 나오기도 하구,
'엄마야 누나야'라는 드라마에서는
황수정씨가 언어장애로 나오니까,
그 때문인것 같습니다.
암튼 저는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근데 제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걸까요?
강타씨나 황수정씨의 수화가
엉터리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걸까요?
물론 엉터리긴 하지만, 그건 아닙니다.
저는 저에게서 수화를 배우고 있는
한 학생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겁니다.
그 학생은 저와는 개인적으로
고등학교 동창인데 (별로 친하지는 않았지만),
암튼 올해 스물다섯이니까
나이도 좀 먹었고, 작년에 제대해서
일년간이나 백수였으니까 빨리
직장도 구해서 일해야 할텐데..
어느날 저를 찾아와서는
수화를 배워야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매일 찾아와서 수화를 배웠습니다.
저는 사실 의아했죠.
그 친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생긴건 조폭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자원봉사나 장애복지에 관심이 있던 친구도 아니라서
이 친구가 무슨 바람인가했죠.
알고보니 바람은 바람이더라구요.
그 친구가 소리회에 찾아온지
일주일정도 지났을무렵,
우연히 성당에서 조금 떨어진
공원에 갔었는데.. (사실 뽁기 사먹으러 갔었습니다. -_-)
멀리서 두 남녀가 키스하는
모습이 보이더라구요.
저도 혈기왕성한 사내로서
자주 못보는 라이브 키스였기에
멀찍이서 유심히 바라보았답니다.
근데 키스를 하는 두 남녀..
모두 제가 아는 사람들이더군요.
여자는 개인적으로 아는 청각장애인이었고,
남자는 제가 말했던 그 친구였습니다.
속으로 피식 웃었죠.
그제서야 저 친구가 왜 수화배운다고
그 난리를 쳤는지 이해가 가더군요.
저는 나중에 그 친구를 불러서
듣기 싫은 소릴를 좀 했습니다.
청각장애라는게 다른 장애랑은 좀 다르다구..
오랫동안 커미니케이션이 단절된 상태로
살아온 사람과의 교재가 생각보다 쉽지
않을꺼라고 했었지요.
할말은 아니지만, 그런 커플이 오래가지
못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던 저로서는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그 친구 막 흥분해서, 침까지
튀겨가며 자신과 그녀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하더군요.
자신감에 차 있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보기 좋았습니다.
하긴 여자친구 때문에 수화까지 배우러 올정도니까..
저도 조금은 그 친구에게 감동했죠.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그냥 감동적이고 예쁜 이야기겠죠?
하지만 아쉽게도 이게 끝이 아니랍니다.
그 친구.. 지금 병에 걸렸습니다.
안구에 종양이 생겨서 시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더군요.
곧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된답니다.
비러먹을 세상입니다.
욕밖에 안나옵니다.
상상이 가십니까?
여자친구는 농아, 자신은 맹인인 상황을..
여자친구는 수화로 밖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데,
그놈은 그 수화를 알아볼 수가 없고..
반대로 그놈의 말을 여자친구는
조금도 알아듣지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병신같은 자식..
희죽거리며 웃기만 합니다.
오늘은 여자친구랑 함께 점자를
배우기로 했다고 자랑하더군요.
저.. 그말 듣고 왈칵 울음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친구는 이제 제 얼굴도 확실하게 알아보지 못하더군요.
제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데 그것도
모르고, 계속 히죽거리며 여자친구 자랑만
하는걸보니까..
정말 병신같죠?
오늘 문병갔었는데 수화갈켜달라더군요..
앞도 못보면서 수화는 뭐하려 배우냐니까..
그래도 그걸 알아야 여자친구한테
할말을 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 친구..
그 친구가 다음주에 수술받습니다.
수술성공 가능성은 없다지만 어쨌든 받습니다.
세상에 기적이 있다면 정말 그
친구에게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이 이야기 실화냐구요?
실화입니다. 젠장..
지금까지 별로 안좋아했던 친구지만..
오늘밤엔 그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잘랍니다.
혹시 함께 기도해주시지 않으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