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apt 놀이터엔 아주 낡아보이는 자전거 한대가 세워져 있다.
그 낡은 자전거 주인은 요즘, 기어가 12단으로 되어져 전국을 하이킹
하더라도 끄떡없을 아주 튼튼해 보이는 새 자전거에 마음이 가 있는지
이젠 오며가며 보게되는 자신의 헌 자전거에 눈길주는 것조차도 거북살
스러워 하는 눈치였다
낡아져 고물이 된 자전거는 놀이터에 세워져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또 놀이감으로서의 기능도 튼실히 해주고 있었다.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손으로 돌려 끽~~ 하는 소리에 성취감을 느끼는 듯
장난스런 개구장이들의 즐거운 모습에서 내 유년의 슬픈 추억이 떠올려진다.
팽팽하던 두개의 바퀴가 바람이 다 새어나가 흐물렁거리듯, 그리고 이미
낡아졌을지도 모를 슬픈 기억이 또 그렇게 나를 찾아와주었다.
여섯살때의 일이다.
내 밑으로 네살, 두살, 돐도 채 되지않은 막내, 이렇게 올망졸망한 적지않은
가족구성원에 여섯살인 내가 단연 대장노릇을 해야했다
법조계에서 일하시던 아버지는 생리에 맞지도 않은 사업에 손을 대셨다가
번번히 실패를하자 자신도 추스리지 못할 만큼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하셨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대신해 흔히 말하는 3D업종에서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가느라, 밤늦게야 집으로 돌아오시는 걸음 걸음에 피곤의 무게가 매일처럼
가득 실어져있었다
그날도 어머니는 내가 집안에서 해야 할 일들과, 백원정도의 돈을 손에 쥐어
주시며 동생들을 잘 돌보고 있으라는 다짐을 나에게서 몇 번이고 받아내셨다.
여섯살인 나도 어린 나이였지만 그래도 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에
말썽이라도 부릴때면 야단을 치기도, 달래기도 하면서 부모님을 대신해
버겁기만한 맏이역활을 일찍이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아침마다 주고 가시는 십원짜리 동전 몇개, 많으면 백원정도가 그날
하루 우리가 군것질 할 수 있는 몫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당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행복이었는지도.
엄마가 보고싶다고 우는 것인지, 배가 고파 우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동네가 떠나가라 큰 울음을 터트리는 막내동생을 등에 업고
남아있는 동생들은 양손에 나누어 붙들고 집 앞 작은 도로로 나갔다.
밖으로 나와도, 등에 업고 있어도 자꾸만 칭얼대는 막내에게 온통 신경이
곤두서져 언덕을 내려오던 자전거에까지 미쳐 눈을 두지 못했었다
배가 고프면 엄지 손가락을 몇 번 빨다 이내 잠이들만큼 순하기만 한
세째동생이, 급브레이크에도 잘 멈춰지지않는 언덕길에서 치이고 말았다
다행히도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발목쯤에 자전거와의 충돌로 생긴 상처,
그리고 넘어지면서 다친 부위가 조금 찢겨져 있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세째동생을 바라보는 자전거의 주인은 어림잡아
열여섯, 아님 열일곱쯤 되어보이는 미소년의 모습이었다.
소년도 나 만큼이나 뿌옇게 흐려진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인식해야 했다
얼핏 스쳐든 열감이랄까?
깡마른 체구, 몸 구석 어딘가에는 어둠만이 내려져 한줄기 광선을 애타게
그리워 하는듯, 풀빛조차도 묻어날 연약함이 느껴졌다.
이런 나를 두고 어른들은 '성숙하다'라고 애써 좋은 표현을 해주었다
여섯살밖에 안된 나에게 이 말은 결코 칭찬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병원으로 가지는 않았다.
약국을 찾아 동생을 치료받을 수 있게 해주었고 상처에 필요한 약으로 대신했다.
소년은 자신의 가난을 굳이 입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고통을 상대방이 대신 알아주기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더 이상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소년은 꽈배기 과자 만드는 공장에서 구멍가계나 상점들에 배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고 싶었는지 작은
상자의 꽈배기 과자를 한달간 우리집에 배달해 주기로 약속을 했다
착하기만한 세째동생은 그렇게 또 우리에게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선행을 베풀어 주었다.
다음날부터 나와 동생들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다.
매일 아침 배달되어져오는 꽈배기 과자 한 상자에!
배고픔으로 먹는 과자는 더 이상 군것질이 아닌 우리에겐 주식과도
마찬가지였다
먹어도 먹어도 그렇게 맛있을 수 가 없었다.
고온에서 바삭하게 튀겨낸 꽈배기 과자를 오도독~ 하고 깨물 때면
세상에 있는 富를 다 가진 것만큼이나 뿌듯했다.
한달이 지나자 그간의 누렸던 기쁨도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행복은 다시 찾아와주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에 떨게했다.
그 이후,
나는 자전거가 지나가는 아침시간에 맞춰 세째동생을 밖으로 자연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몰고 있었다.
발목부상이 완전히 아물어지지도 않은, 내가 힘들어 할까봐 소리없이 울던
순하기만한 동생을!
언덕길을 넘어오는 자전거에 한번만 더 다쳐주기를 바라는,
그래서 꽈배기 과자를 한달쯤 다시 먹을 수 있다면 하는 무정한 바램같은....
이 악심은 진정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품을 수 없는 이율배반적인 행위였을까?
아니면, 부드러운 아침공기가 가늘게 소리없이 내리는 비를 희롱하는 것 만큼
이나 슬픈일이었을까?
쓸쓸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지만 어쩔수 없이 미소를 흘려야만 하는,
슬프고도 우울할 수 밖에 없는 추억이다
그것은 한 10년쯤 밤낮으로 동경하며 상상하던 사람이 정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 때보다 더욱 가슴이 아픈,
그리고 가난한 노파의 눈물을 굳이 훔쳐오지 않아도 내안에서 고결하게 흘러
내릴 수 있는 진정한 눈물인 것을....
사람은 누구나 무인도 하나씩 가슴에 숨겨놓고 산다는 '박재삼'詩人의 글처럼,
나의 뼈져린 아픔을 어딘엔가 얹고 싶은 날!
통일로를 따라 멋진 하이킹라도 떠나볼 생각이다.
기어가 12단으로 되어진 자전거 폐달을 맘껏 밟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