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번 미팅을 해봤습니다.
친구놈이 하도 졸라서 미팅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미팅을 좋아하는 편
이 아닙니다. 우선은 선택이 되어져야한다는 두려움을 갖긴 싫었습니다. 내
가찍은 여자가 나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하냐는 부담을 안으면서
까지 여자를 만나고 싶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꼭 5명을 채워야한다는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서 나가게 되
었습니다.
' 나는 미남도 아니고, 그렇다고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닌데 여자들이
날 좋아할까? '
나의 그런 걱정은 사실이 되었습니다. 친구가 골라온 남자들은 내가 예상했
던 것보다 훨씬 더 근사한 남자였습니다. 더구나 상대편 여자들도 보기드문
미인들이였습니다.
거짓말 하나도 안보태고 나는 자리에 앉아서 앞에 놓인 물을 한 잔 마신 후
에는 그 어떠한 다른 행동도, 그 어떠한 다른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고개만 푹 숙인채로 앉아있었습니다.
유달리 다른 남자들의 떠드는 말과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커다랗게 들려왔습
니다.
" 뭐하세요? "
갑자기 한 여자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무척 귀엽
게 생긴 여자가 나를 보면서 생글생글 웃고 있었습니다.
" 아까부터 고개만 숙이고 있던데, 뭐하고 계신 거죠? "
" 그냥.. 저.. "
"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던 거죠? "
" 저도 무슨 말은 해야겠는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 지 잘 모르
겠기에.. 무슨 말을 해야할 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
" 하하하~ 방금 그것 웃으라고 한 소리죠? "
" 웃으라고 한 소리를 이렇게 땀 흘리면서 하는 사람 봤어요? "
" 하하하~ 그 말도 일리는 있네요. 이름이 뭐죠? "
"윤성호요. "
" 제 이름은 소은정이예요. 기억해주세요. "
그리고나서 얼마후에 파트너 결정을 하는 순서가 왔습니다. 아까 나랑 얘기
하던 그 여자는 자기 이름만 밝히고는 다른 남자들의 앞으로 자리를 옮겨버
렸습니다. 남자들 쪽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두들 그 은정이라는 여자에게
호감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마지막까지 그 여자랑 얘기를 나누던 '기
호'라는 남자는 거의 병적으로 그녀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기호'라는 남자애는 스스로도 무척 자신이 있는 듯, 쪽지에 '소
은정'이라는 이름을 크게 써놓고 큰 소리를 치고 있었다.
" 아까, 나랑 애기하는 것 봤지? 분명 그 애도 날 찍었을꺼야. "
사실, 내가 여자래도 그 남자를 찍었을 것입니다. 그 남자애는 키도 크고,
잘 생겼고, 더구나 말도 무척 재미있게 하니까요.
" 넌 누구를 쓸 꺼냐? "
친구가 내게 물었습니다.
" 난.. 그냥, 별로.. "
솔직히 난 여자들의 이름도 몰랐습니다.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아까 내게 이
름을 알려줬던 소은정이라는 이름밖엔 없었습니다.
' 에라~ 모르겠다. '
나도 그 이름을 쪽지에 썼습니다.
그리고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녀도 나의 이름을 쓴 것이였습니다. 사
람들 모두 무척 놀라워했습니다. 당사자인 나도 놀랬으니까요.
" 난 아까 이름 물어보고 나서 바로 썼는데.. "
2.
운좋게 파트너는 됐지만 그 뒤의 일은 더욱 갑갑했습니다. 남녀 단 둘이서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습니다.
다음엔 술을 마셔야 하는지? 술을 마신다면 소주를 마셔야 하는지? 아니면
맥주를 마셔야 하는지. 술보다는 차를 마시는 것이 더 나은 것도 같은데..
하지만 어쩐지 너무 상투적인 것도 같고.. 차를 마실려면은 내가 말을 많이
해야하는데, 그럴 자신도 없고..
" 저..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
" 그건 남자가 결정하는 거죠. "
" 잘 몰라서 물어보는 건데요. "
" 그래도 이런 것은 남자가 해야해요. 저는 아무데나 따라갈께요. "
비디오방엘 갈까? 아냐, 날 이상한 남자로 볼 지 몰라.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나올 때 친구에게 살짝 귀띔을 받는 건데.. 라는 후
회가 들었습니다. 미팅 나갔던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평소에 잘 좀 들어
두는건데.. 라는 후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후회해도 이미 늦었습니다. 여
자와 나는 이미 한시간 이상을 걸어다니기만 했습니다.
나는 답답해서 담배만 물고 있었습니다. 한시간 동안 걷기만 했으니, 여자
쪽에서 무척 화가 났을 것 같아서 고개를 돌려 여자를 보았습니다. 화를 내
고 있는 얼굴은 아니였지만, 무척 피곤해 하는 얼굴이였습니다.
" 저.. 피곤하신가 보죠? "
" 네, 조금.. 이거 어쩌죠? "
" 네? "
" 피곤해서 이만 들어가봐야겠어요. 게다가 아직 끝내지 못한 리
포트도 있거든요. "
" 네, 그렇다면 할 수 없죠. "
한시간 이상이나 걸었으니 피곤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는 이만 헤어지자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전에 한번 친구들이 했던 이야기 중에,
' 여자가 피곤하다느니 끝내야 할 리포트가 있다는 핑게를 대는
것은 남자가 맘에 안든다는 뜻이다 '
'퇴자 맞은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처럼 재미 없는 남자
에겐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냥 이대로 보내긴 싫었습니
다. 나는 그 여자가 매우 맘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 밑져야 본전인데 에프터 신청을 한번 해볼까? '
물론 10프로도 가망성이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첫 데이트에서 남자에게 실
망을 느낀 여자가 남자의 에프터 신청을 받아줄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내가 싫다는 표현을 한 것인데도, 내가 에프터 신청을 하는 것이 되
기 때문에 차마 입에서 말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 오늘은 피곤해서 아무래도 안되겠고요. 내일 오후에 약속 비우
세요. 저랑 영화나 보러가요. 제가 표는 끊어놓을께요. 꼭 비
워주실꺼죠? 그죠? "
오히려 에프터 신청은 그녀가 나에게 먼저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3.
얼마 안가서 그녀와 나는 연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곤 아주 오랜 시간이 흘
렀습니다. 우린 조금만 있으면 결혼을 하게됩니다.
얼마전에 나는 그녀에게 그동안의 오랜 궁금증이였던 한가지 사실을 물어보
았습니다.
" 그날 난 별로 재미도 없었고, 그렇다고 내가 잘난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닌데.. 왜 하필 나를 택했고 왜 나에게 먼저 에프터 신
청을 한거야? "
그러자 그녀는 조용히 웃으면서 내게 말을 했습니다.
" 처음에 성호씨를 택한 것은 '이 남자는 틀림없이 좋은 남자다'
라는 예감이 들어서였어. 그런데 실제로 한시간 있어보니까 심
심하기만 하고, 별로 좋은 남자라는 생각은 안들더라고.. 하지
만 성호씨가 들고있던 담배꽁초 때문에 그 생각은 바뀌고 말았
어. "
" 담배꽁초라니? "
" 다른 사람들은 아무 생각없이 그냥 길거리에다 휙휙 버리는 담
배꽁초를 성호씨는 거의 30분 이상 들고 있었잔어. 휴지통을 찾
아서 그곳에 버리기 위해 영하의 한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꽁
초를 들고 서있던 모습이 꽤 인상적이였어. "
" 내가 그랬었나? 하하! 자세히도 봤군. 그런데 단지 그것 때문
에 에프터를 신청한 것은 조금 이상하지 않나? "
" '단지 그것'이라니? 우리가 무심코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도 세
심한 신경을 써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담배꽁초 하나
도 신경을 써주는 남자라면, 사랑하는 사람에겐 더욱 더 잘해
줄 것이 분명하잔아! 내 말이 맞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