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 처음으로 장애인을
만나는 사람들은 우선 장애 자체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불편하냐',
'학교는 다녀 보았느냐'라는
질문을 하면서 동정어린 호기심을 드러냅니다.
이것은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고 그가 입고 있는
옷에만 호기심을 나타내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모든 장애인들이 한결같이 장애가 없는 사람과
똑같이 대해 달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점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의 표현입니다.
참된 만남이란 마음과 마음끼리의 교류입니다.
2. 장애인에 대해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사람
장애인들은 경험이 전혀 없는 봉사자를 꺼려합니다.
돕는 기술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닙니다.
돕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요령은 단시간에
익힐 수 있습니다. 혹시 모르더라도 상대방에게
물어본 후 요구에 따르면 됩니다. 문제는
장애인에 대한 낮은 인식, 편견과 무지로 인한
난처함입니다. 장애인을 별개의 사람으로
간주하는 사람, 배우지 못했거나 세상 물정이
어두우리라고 미리 판단해 버리는 사람,
본인의 뜻은 묻지도 않고 다짜고짜 도우려는
사람, 어린아이 취급하는 사람,
자선을 베푼다고 착각에 빠진 사람. 이같은
초심자들을 만나게 되면 교감의 폭은
어쩔 수 없이 좁아지고 대화는 단조로워지며
심지어 불안감마저 갖게 될 수 있습니다.
경험이 있는 봉사자는 장애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인격적인 사귐을 중시합니다.
3. 너무 아는 척하지 않는 사람 장애인들이
꺼리는 사람들 중에는 경험이 많은 봉사자나
사회사업가, 장애인복지계의 전문가들 중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풍부한 경험과
지식이 장애인을 분류화하여 개인적인 사귐을
가로막곤 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에게 애정이
없는 지식이나 기술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또 장애를 극복하고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태도, 자신이 겪은
장애인이 마치 모든 장애인의 심리를 대변하는
것처럼 경험을 늘어놓는 봉사자들도 꺼립니다.
모든 사람은 서로가 다릅니다.
나름의 처지와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개별적으로 이해되기 바라는 것이지
장애인과 비장애인, 뇌성마비와 소아마비라는
한 두가지 잣대로 분류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장애인들은 봉사자와 친해지기 바랄 뿐입니다.
4. 조급해 하지 않는 사람 도와주는 일을 마치
숙제 해치우듯 서두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장애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봉사자의
성한 몸이 아니라, 서로 맞닿을 수 있는
마음입니다. 마음의 교감을 위해서는 우선
편안한 시간적 여유가 필요합니다. 만남의
목적보다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봉사자가
조급해 하면 장애인은 불안해집니다.
'체중이 무거워 휠체어 밀기가 힘들다'라는
말은 농담이라도 미안함을 갖게 합니다.
운전 봉사자가 교통체증 때문에 짜증을 내면
위로할 말을 건네기조차 어려워집니다.
휠체어 사고는 대부분 서두르는 봉사자가
저지릅니다. 장애인들의 동작 속도는
비장애인들과는 다릅니다.
일상에서 누리는 속도감과는 다릅니다.
특히 계단이나 턱을 넘을 때 조급해 하는
행동을 두려워합니다. 또 용변을 볼 때나
식사를 할 때, 자동차를 타고 내릴 때나
휠체어에서 이동할 때는 나름의 안전감과
여유를 필요로 합니다.
5. 다정하고 편안하게 해 주는 사람
장애인들은 도움을 받는 수동적인 입장이기에
봉사자 쪽에서 먼저 친숙하게 대해 주기를
바랍니다. 장애인 쪽에서 넉살 좋게 먼저
말을 걸고 이것저것 요구하기란 쉽지 않은
법입니다. 장애인들은 '돕는 기술이 뛰어난
봉사자 보다 다정하고 편안하게 대해 주는 사람'을
원합니다. 편안함을 느끼는 때란 압도당하지
않고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는
상태, 처음 만났는데도 자신에게
호기심을 보이지 않는 무뚝뚝한 사람에게서는
다정함을 느낄 수 없습니다. 또 도움을 주고 있다는
분위기를 너무 헤프게 드러낸다면
장애인 자신은 초라한 약자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