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극복한 사람들-산림청장 신순우-◆◆◆
■산에서 취임식 갖는 `장애인' 산림청장"`강한
산림청장의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산에서 취임식을
갖겠습니다."한쪽 다리를 잃은 장애인으로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차관급 고위직에 오른
신순우(59) 전 농수산물유통공사 감사는
주위의 우려를 떨쳐버리려는 듯
산에서 산림행정의 첫 업무를
시작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산림청사가 위치한 대전 인근의 생명의
숲 가꾸기 현장에서 취임식을 겸해
산림행정 계획을 밝히겠다는 것이다.
신청장은 불편한 다리에도 불구하고 매주
청계산이나 우면산등 근교 산을 오르내리는
`악바리 근성'을 과시해왔다.신청장이 다리를
잃은 것은 보성중 2학년 시절.
하교길에 자동차에서 뛰어내리다 오른쪽 다리가
바퀴에 깔리면서부터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고통이 시작됐다.
대문밖을 한번도 나서지 않은채 3년간
집에서 독학을 했던 그는 한 미국인
선교사로부터 의족을얻어 신은데서
인생의 전기를 맞았다. 의족으로자신감을되찾고
장충고에 2학년으로 편입한 것이다.꿈을
키우던 그는 치과의사가 되고싶은
욕심에 서울대 치대에 응시, 필기시험에 합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면접시험에서 "치과의사는 장애의 몸으로
불가능하다"는 학장의 통보로 결국 불합격
처리되면서 장애인으로서의 좌절을 겪어야 했다.
1년 재수끝에 고려대 법대에 합격한 신청장은
69년 제7회 행정고시에도 장애인으로선 처음으로 합격,
농림수산부 수출진흥관실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별탈없이 공무원 생활은 이어졌지만
승진 때마다 `장애인'이라는 꼬리표는
항상 걸림돌이 되기 마련이었다.
국장 승진 때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두번이나 미끄러진 끝에 겨우 과장
꼬리표를 뗄 수 있었다.한번은 농림부 국장이
국방대학원의 일까지
맡아야 했던 때가 있었는데
`국방대학원에서는 구보를 해야하기 때문에
장애인이 겸임하기에는 문제가 많다'는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승진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신청장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다리의 장애가
정말 싫었다"며 "장애인이기 때문에일을
그르친다는 말을 들을까봐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했다"고 말했다.
국장 승진후에도 고난은 이어졌다.
93년 5월 농안법 파동 등으로 그는 직위해제를
당하기에 이르렀다. 동고동락해왔던 부인
김영애씨도 이때 불치병에 걸려 4년여간의
투병 끝에 97년 숨지는등 개인적인 역경이 계속됐다.
공직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93년 7월부터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수석부회장을 맡아
장애인 주차장설치, 장애인 의무고용 등 장애인
복지활동을 펴기도 했다.
복직 만료기간(3개월) 5일 전에야 출근하라는
연락이 왔다. 결국 농림부 원예특작국장,
국립농산물검사소장 등을
거쳐 지난 97년 5월부터 농수산물유통공사
감사를2기째 지내다 산림청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98년 5월에는 교회 신도의 소개로 인근 교회
집사이던 김복순씨와 재혼,안정을 되찾은
상태.신청장은 "지체장애인의 90%가 후천적인
사고로 인한 것"이라며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장애인을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차관 입성이 장애인들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줄 것이라며 그것만으로도
이미 족하다고 환하게
웃었다.▷ 출처 : 한겨레신문 2000/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