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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극복한 사람들-시인 송명희-◆◆◆


■뇌성마비 시인 송명희씨(36)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그녀는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제대로 몸을 가누지못했다.

아무리 고개를 똑바로하고 싶어도 자꾸 옆으로 

기울어진다.지난해말부터는 악성목디스크까지 

발병해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인간적으로 볼 때 그녀는 가장 불공평한 

삶을 부여받았다.신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처럼 

보이는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공평하시다”고 외친다.

그리고 공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말한다.그녀는 시인이다.정상인이 아닌 뇌성마비 

장애인이 몇 줄 썼기 때문에 동정하는 뜻에서 

시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어떤 훌륭한 시인도 표현하지 

못한 하나님의세밀한 사랑을 그려내는데 

탁월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나/가진 재물 없으나/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있지 않으나/나 남의 

갖고 있지 않은 것 가졌으니/나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나 남이 듣지못한 음성 

들었으며/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받았고/

나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나남이 가진 것나 없지만/

나남이 없는 것을 갖게 하셨네'.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시 `나'는 그녀의 신앙고백이다.

그녀는 태어 나기전부터 뇌성마비 장애아였다.

의사가 안의 아기의 뇌를 집게로 잘못 

건드려 소뇌가 손상됐다.

신체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소뇌가 제기능을 

하지 못해 그녀는 일생동안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살게 됐다.

뇌성마비 장애인인데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형편.분유 한 병 제대로 먹을 수 없었던 

그녀는일곱살 때까지 누워 있어야만 했다.

열살이 넘어서야 밥숟가락을 스스로 쥘 

수있게 됐다.아버지는 결핵에 시달렸다.

어느 것하나 `공평하다'는 말이 나올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그러나 그녀는 

절망을 희망으로 승화시켰다.

물론 지난 시절 그녀도 하나님과 부모님을 

수없이 원망했었다.

비탄에 빠진 욥과 같이 자신의 탄생을 

저주하기도 했다.

사춘기에는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태신앙인 이었던 그녀는 

그냥 죽을 수 없었다.

17세때 “죽더라도 하나님을 만나고 

죽어야겠다”며 하루에 몇 시간씩 목숨을 걸고 

기도를 드렸다.

자신을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세상에 나오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절규하면서 찾았다.

기도 가운데 그녀는 하나님을 만났다.

어둠 속에서 빛이 보였다.그리고 빛 가운데 

“하나님을 믿으라! 네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죽으리라”는 글을보았다.그녀는 거듭났다.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내가 

너를 버리지 않겠노라”고말씀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기 시작했다.담대함이 생겼다.

그후 시간을 정해놓고 계속 기도하던 중 어느날

갑자기 시가 터져나왔다.

학교라곤 가본적이없는 그녀였다.

특별하게문학적인 재능을 타고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신기하게시가떠올랐다.그녀는 알았다.

시는 `예술가 중의 예술가'이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란 것을.그녀는 온 몸을 뒤틀며 시를 썼다.

몸을 조절하는 소뇌는 손상됐으나,

사고와 감각을 담당하는 대뇌는 더욱 왕성하게 

활동한 것이다.과연 하나님은 공평하셨다.

그때 쓴 시가 `나'였다.

시상은 계속 떠올랐다.시를 써서 극동방송에 

보냈다.그 무렵 서울대 음대 성악과 

졸업반이던 최덕신씨가 

송명희씨의 시 `너의 쓴 잔'을 극동방송을

통해 소개받고,그 시에 곡을 붙였다.

최씨는 그녀를 만난 뒤 `나'를 

비롯해 `예수 그 이름' `열어 주소서' 등 

그녀의시에 곡을 붙여 `그 이름'이라는 음반을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규장문화사에서는 그녀의 

시를 묶어 시집을 펴냈다.

시집과 음반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전국 각지의 교회에서장애를 극복하고 

하나님을 찬미한송명희씨를 초청했다.

그녀는 뒤틀린 입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간증했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희망의 메시지를전했다.

미국 일본대만 이스라엘등 각국을 돌며 간증했다.

지금까지 1천5백여회의국내·외 집회에 참석했다.

종합예술 선교단인 `함께 선교단'을 만들어문화선교활동도 

벌였다.머리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던 여린 뇌성마비 장애인 

소녀가 세계를 돌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선교사가 된 것이다.은혜였다.그러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지난해 말갑자기 목디스크가 발병했다.

컴퓨터조작은 물론 식사도 스스로 할수 없게 됐다.

몸이 저려 잠을 자다가도 30분마다 깨났다.지난달 

31일 올림픽공원에서 만난 송명희는 

처연할 정도로 연약해 보였다. 

어머니 최정임권사와 아버지송형섭장로의 도움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안타까운상태였다.

처음 발병했을 때보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그녀는 간신히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노숙자들이 걱정돼요.겨울은 다가오는데 저러다가 

거리에서 얼어죽으면어떡해요.

전국의 교회가 몇 명씩 이라도 나누어 품어서 

노숙자들이 겨울을 날 수 있게 해야 해요” 

그녀는 “예수님도 노숙자로 이 

땅에오셨다”면서 

자신에관한 어떤 얘기보다도 이 말을 꼭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건강해지면 먼저 기도하고 싶고,

기도의 힘으로 가난하고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말을 이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가 송명희씨보다 더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동시에 누가 과연 송명희씨보다 

더 행복하다고 자신있게말할 수 있는가.

시월의 마지막날 올림픽공원에는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사진촬영에 열중하는신부들의 모습이보였다.

그러나 화려하게치장한 그 어떤 신부도 

휠체어에 앉아서 고개를 흔들며 절규하듯 하나님을 

얘기하고이웃을걱정하는 그녀보다 아름다울 수 없었다.

▷ 출처 : 국민일보 98/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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